1. 르네상스 운동과 인문주의 교육
르네상스는 고전 학문과 그 가치에 대한 관심의 확대로 인간의 본성을 재발견하여 그의 존엄성을 드높이려는 지적 각성운동이다. 이러한 지적 각성운동은 신중심에서 인간 중심으로의 전환을 가져오게 한 계기가 되었기 때문에 당시의 학자들은 인문주의라고 하였다.
인문주의가 처음으로 시작되어 발전을 주도한 나라는 이탈리아이며, 그 대표적인 인물은 단테, 페트라르카, 레오나르도 다빈치 등이다. 인문주의는 다음과 같은 특징을 지니고 있다.
첫째, 모든 다양한 표현과 작품에서 인간의 본성을 그 주제로 삼고 있다. 둘째, 모든 철학, 신학의 학파와 그 체계에 나타나는 진리의 통일성과 조화성을 강조한다. 셋째, 인간의 존엄성을 강조한다. 인문주의자들은 인간의 활동에서 가장 고귀한 형태로 인식되던 속죄의 생활이라는 중세의 이상 대신에 창조를 투쟁과 자연의 정복에 대한 시도를 소중히 여겼다. 넷째, 인문주의는 상실된 인간 정신과 지혜의 부활을 고대했다. 인간 정신과 지혜의 재생을 위해 노력하는 과정에서 인문주의자들은 새로운 정신과 지식에 대한 전망을 공고히 하고 새로운 학문을 발달시키는 데 공헌했다. 인문주의는 전통적 종교 교리가 강요한 정신의 억압 상태에서 인간을 해방시키고, 자유로운 탐구와 비판력을 자극했으며, 또한 인간의 사고와 창의력을 중시하였다.
이러한 인문주의에 나타난 교육적 성격은 무엇인가? 중세 시대는 기독교 사상이 지배하여 교회가 절대적인 권위를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인간의 가치가 무시되었고, 중세 말기에 이르러 스콜라 철학이 주류를 이루었을 때는 모든 학문과 교육이 신학을 옹호하는 수단으로 전락되었다. 인문주의 교육은 이러한 상황에서 인간의 존엄성을 되살리고, 인간 이성의 가치를 그리스, 로마 문화 및 고전 연구를 통해 재발견하는 데 관심을 두었다.
이탈리아의 비토리노, 네덜란드의 에라스무스, 프랑스의 라블레, 스페인의 비베스 등과 같은 인문주의 교육 사상가들이 고대의 자유 7 교과목과 같은 인문학 중심의 교육을 정착시켰다. 그들은 이러한 자유 교양교과를 가르침으로써 지적, 도덕적, 미적으로 완성된 인간을 양성하는 것을 그 목적으로 삼았다. 이를 위해 자기표현이나 사고의 자유, 창의적 탐구와 같은 교육방법을 중시하게 되었다.
대표적인 인문주의 교육사상가는 에라스무스이다. 그는 교육의 목적을 경건한 마음, 도덕적 정신 함양과 선한 생활, 그리고 성서문학을 통한 마음의 풍요함을 갖게 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이를 위해 그는 '아동의 자유 교육론'에서 모든 교육은 빈부, 귀천과 남녀의 차별 없이 평등하게 교육이 이루어져야 한다고 주장하면서 다음과 같은 교육방법의 운리를 밝히고 있다.
① 체벌은 학습 동기를 유발하는데 도움이 되지 않기 때문에 필요치 않다. '자유인에게는 자유스러운 교육'을 해야 한다. 체벌 없는 자유교육이 참된 교육이다.
② 아동의 성격을 면밀히 조사하여 개별학습을 하도록 해야 한다.
③ 아동의 정신발달과 흥미에 따라 가르치는 교재의 분량을 정해야 한다.
④ 서둘지 말고 점진적으로 가능한 흥미 있게 자연에 따라 가르쳐야 한다.
⑤ 운동, 놀이, 체조 등을 어릴 때부터 가르쳐야 한다.
그러나 인문주의 교육에서 지향하는 자유교양인을 위한 교과목을 가르치기 위해서는 고대 그리스어와 라틴어를 학습할 필요가 있었는데, 점차 수단과 목적이 전도되어 고전문학의 학습 자체에 관심이 쏠리게 되었다. 특히 16세기를 지나면서 고전 문장을 암송하는 언어주의와 형식주의에 빠지는 경향이 생기게 되었다. 그중에서도 키케로의 문장은 고전 문장 중에서도 가장 우수한 것으로 공인됨에 따라 시세로가 사용한 단어나 구절을 이용하여 생각을 표현하는 소위 시세로 주의 현상이 나타나기도 하였다.
2. 종교개혁운동과 실학주의 교육
이탈리아를 중심으로 일어난 르네상스 운동이 새로운 인문주의적 학문, 예술, 문화, 교육 등의 기운을 불러일으키고 있을 때, 독일에서는 16세기 초 또 다른 개혁 운동, 즉 종교개혁운동이 일어나고 있었다. 르네상스 운동에 의해 상실된 인간성을 회복하려는 움직임이 나타나기 시작하면서 봉건적 지배체제와 교회 세력의 권력 집중화에 대한 투쟁과 인문주의적 각성 운동이 곧바로 종교개혁운동에 불을 지폈다.
수백년 동안 교회, 특히 교황청은 유럽의 정치, 경제, 사회, 문화, 교육 영역에 깊이 개입하였다. 또한 면죄부와 성물 판매, 성직자들의 타락으로 인해 대중들이 착취당하고 교회의 영적인 권위는 실추되었다. 교회는 그의 절대 권력화에 따른 자체 모순 때문에 강력한 비판 운동에 직면하게 되었다.
중세 교회의 권력지향의 문제는 이미 마틴 루터가 1517년 종교개혁운동을 일으키기 이전 에라스무스 같은 신학자에 의해 꾸준히 비판되었다. 그는 교회에 만연된 미신과 도덕적 악습을 공격하고 최고의 교사인 그리도를 모방하라고 촉구하기까지 하였다.
종교개혁운동은 단순히 종교라는 한 영역의 개혁이 아니다. 다시 말하면 중세가 신중심 시대인 만큼 종교개혁운동은 교회혁신운동으로 출발하였지만 결국에는 그 시대 전체를 변화시키려는 대개혁 운동이었다. 이렇게 볼 때 종교개혁은 교회의 민주화를 통해 급진적으로 인간 중심의 시대 사상을 발전시키는 계기가 되었다. 이를 통해 보다 근대적인 사회로의 변화를 추구하려는 지적 움직임과 함께 근대 교육관 형성에 기여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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