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교육학

제2장 중세의 교육 2. 중세의 교육 형태

by 정 그릿 2021. 12. 22.
반응형

 신중심 사상과 봉건제적 정치, 경제체제하에서 교육은 어떤 성격과 방식으로 진행되었을까? 간단히 요약하면 신중심 사상에 입각한 교육은 대표적으로 수도원 교육과 스콜라철학에 입각한 교육이 있었고, 봉건체제와 관련해서는 기사도 교육이 있었다. 이 양자는 기독교적 정신에 입각해 있다는 점에서는 공통적인 성격을 지니지만, 그 역할 면에서는 차이가 있다. 그 외에 중세기 말 상인 들의 비형식적 실업 기술 전수와 같은 조합 교육과 이러한 조합 형태를 띤 고등학문 전수를 위한 대학이 설립되었다. 

 

  가, 수도원 교육

 기독교적 수도원은 명상적이고 신비적인 생활에 봉사하는 금욕주의자들에게서부터 발전하였다. 영원한 구원을 빋고 세속적인 향락과 실제적인 삶에서 떠나 금욕적인 신앙생활을 추구하였다. 따라서 수도원 생활을 하는 자들은 일반 사람들을 떠나 육체의 엄격한 훈련과 신에 철저히 봉사하고 기도하는 정신을 갖도록 훈련되었다. 현실의 생활에 관심을 갖지 않고 다가오는 새로운 세상을 위한 최선을 준비, 즉 노동하고 기도하는 일에만 열중하도록 가르쳤다. 

 대표적인 수도원은 성 베네딕트가 이탈리아 남부에 세운 몬테 카시오노이다. 베네딕트는 수도원의 조직과 관리와 구성원의 일상생활을 상술한 73개 조의 법전을 작성하였고, 이후 이 규정은 서방의 모든 수도원 교육에 채택되었다.

 이러한 은둔적 수도원은 고대 학문과 종교 문화를 보존하고 전파하였을 뿐만 아니라 새로운 종교 교본을 창작하였다. 이와 함께 가난한 자, 병든 자 등을 구제하는 사회 복지의 역할도 하였으며, 중세기의 악과 부패에 대항하기도 하였다.

 수도원은 육체적 욕망을 억제하는 금욕과 청빈 그리고 현세 부정의 도덕 교육적 성격을 지니고 있었다. 예를 들어 베네딕트의 규칙은 순결, 청빈, 복종의 세가지 서약을 승려에게 부과하였다. 여기서 순결은 가족을 포함한 모든 인간관계를 단념하고 명상과 예배에 헌신하는 순수한 종교적 태도를 의미한다. 청빈은 모든 물질적 이익과 소유를 거절하는 것이고, 복종은 권력, 계급, 차별에 대한 부정을 통해 개인적 이익을 취하는 권리를 단념하는 것이다. 따라서 수도원 생활과 교육은 가정과 경제와 정치 모두를 부정하고 오직 내세를 위한 준비를 위한 도덕적 훈련과 영적 훈련에 몰입하도록 하였다.

 수도원의 교육형태는 수공노동과 성서 문학 독서이다. 베네딕트의 규칙에 따르면, '승려들은 항상 수공 노동과 성경 독서를 하지 않으면 안 된다.'라고 되어 있다. 그 규칙은 매일 7시간의 수공 노동을 하고 매일 두 시간 동안 교회의 성전 문학을 읽어야만 했다. 수공 노동의 필요는 승려들의 건강을 유지하는 방법이기도 하였으나, 유혹과 망상에 빠지지 않기 위해 생산업에 열중하도록 하였다. 이러한 수도원 생활은 새로운 농업에 관한 지식을 만들어 수공업 발전에 크게 기여하기도 하였다. 이와 더불어 성서 관련 문헌을 수집하고 종교적, 도덕적, 역사적 작품을 창작하고 읽는 것을 필수로 삼았다.

 

  나. 기사도교육

 중세시대에는 기독교 승려와 봉건적 귀족 그리고 농노 계급으로 나누어져 있었다. 수도원 교육과 스콜라 철학이 기독교 교회에 의해 발전된 것에 비해, 기사도 교육은 봉건체제가 발전했던 9세기 초부터 16세기경까지 자리 잡은 대표적인 비형식적 중세 교육이다.

 봉건제는 본래 토지 소유관계가 봉사와 보호의 사회적 계급으로 전환되면서 발전하였다. 즉 봉건제는 영주로부터 토지를 부여받은 봉신이 본래 토지 소유자인 영주에게 봉사의 의무를 짓게 되어, 영주의 군사적 필요시에는 군사로서의 봉사를 수행하는 절대적 충성심을 갖는 계급제도이다. 바로 영주의 권력과 연결되어 영주의 세력을 보호하는 사회적 규율과 관습이 기사도를 성립시켰다.

 기사도란 불어 말에서 유리된 것으로, 규정된 훈련을 통해서 규정된 서약을 지키는 귀족 자제가 기사가 되었다. 따라서 기사도 교육은 기사를 양성하는 훈련으로 기독교적 도덕성과 게르만족의 무사 정신을 결합한 귀족교육이다. 약자에 대한 보호와 여자에 대한 의협심, 그리고 매사에 정직할 것을 목적으로 행동의 실천을 중시하였다. 진실한 기사는 신과 왕과 부인에 봉사와 헌신하는 자이었다. 이러한 사람이 되기 위해 그는 교회에 대한 충성의 표현으로서 신앙의 서약과 봉건적 군주에 대한 충성의 표현으로서 충성의 서약, 부인에 대한 충성의 표현으로 의협의 서약을 하였다. 

 이러한 서약을 한 기사의 생활신조는 '사람들이 가장 높이 우러러보도록 행동하라'는 것이다. 이에 기사도 교육은 육체적, 사회적, 군사적, 종교적 활동력을 기르는데 필요한 신체훈련, 복종과 예절 훈련, 군사훈련, 그리고 종교교육을 실시하였다. 

 기사도 교육과정을 보면, 7세까지 상류계급의 자녀들은 가정에서 어머니에게 필요한 신체적, 도덕적, 종교적 훈련을 받는다. 7세에 그들은 봉건 군주의 성에 들어간다. 7세에서 14세까지의 소년은 시동으로서 귀족부인에게 시중들고, 귀부인은 소년을 지도한다. 14세부터 21세까지의 청년은 기사에게 시중든다. 그는 귀부인에게 봉사하고 노래하고 악기를 연주하지만, 그의 주임무는 그의 군주에게 절대 봉사하는 것이다. 예비 기사는 식탁에서 봉사하고 잠자리를 만들고 말을 손질하고 방패를 운반했다. 그는 경기장과 훈련장에서 평화와 전쟁의 두 기술을 배운다.

 21세 때에 그의 교육은 완성되고 기사로서의 준비가 완성된다. 그는 고백과 단식을 하고 무장한 채 철야하면서 의식을 행할 준비를 한다. 그는 엄숙한 종교적 의식 속에 군주에게 충성을 다할 것, 여자와 고아를 보호할 것, 그리고 교회를 보호할 것을 서약한 후 기사 작위 수여식을 거쳐 정식 기사가 된다.

 

  다. 조합 교육

 중세의 최고의 목적이었던 성지 예루살렘 탈환을 위한 십자군 전쟁은 무역과 상업을 발달시킨 계기가 되었다. 상업을 중심으로 한 자유도시의 성장으로 중간 계급, 즉 새로운 경제력을 확보한 시민 계급이 형성되었고, 이들은 상업을 발전시키기 위한 조합 제도를 발전시켰다. 

 조합 제도는 상업과 산업영역에서 새로운 시민계급들이 조직한 상인 조합과 직공 조합으로 구분된다. 상인 조합은 상인들 간의 이익 도모를 위한 조직이고, 직공 조합은 제작인과 공인과 기술 노동자들이 조직하였다.

 중세 말기 시민계급들은 그들의 자녀가 이러한 조합에서 실시하는 교육을 통해 상업적, 산업적 활동을 준비시켰다. 이로 인해 조합은 조합 학교를 운영하였고, 모국어와 읽기, 쓰기, 산술 등의 초보 지식과 생산기술 교육이 결합된 직업 교육을 실시하였다.

 일반적으로 조합 학교는 도제 교육이라고도 하며 성직자가 교사로 활동하기도 하였다. 조합에서 이루어지는 교육은 철저히 마스터 중심이었다. 10세 전후의 도제는 일정 기간 마스터와 동거하면서 임금 없이 봉사하면서 직업 교육을 받은 후 직공으로 승격한다. 직공은 마스터에게 구속되지 않고 그가 원하는 대로 다른 마스터에게서 배울 수 있다. 그리고 임금도 받고 자기 가정을 가질 수도 있다. 직공은 자기가 속한 마스터나 조합에 자기 창작품을 제출하여 심사를 받고 난 뒤 정식 조합원이 됨과 동시에 새로운 마스터로 활동할 수 있게 된다.

 르네상스 시대의 많은 인문주의 예술가들은 이러한 도제교육을 통해 훈련받았다. 예를 들면 레오나르도 다 빈치의 아버지 피에로는 아들이 그림과 건축에 흥미가 많은 것을 보고 그를 플로렌스의 저명한 화가이자 조각가인 베로키오의 공방에 보냈다. 15세의 다빈치는 베르키오의 정식 도제가 되어 7년 동안 공부와 수련을 쌓았다. 그는 화가 조합에 1472년 가입하였고 독립한 예술가로서 마스터가 된 것은 1477년이었다. 그는 25세에 비로소 독립된 화가가 된 것이다.

 비형식적 조합 교육은 새로운 기술 생산 시대로의 전환을 촉진하였고, 이로 인해 교육의 세속화와 실생활에 도움이 되는 전문 직업교육이 발전하였다. 이러한 도제 형태의 기술교육은 지금도 서구 유럽의 상공업 관련 계통에서 부분적으로 행해지고 있다.

 

  라. 대학의 성립

 11세기 유럽 전역에서 성행하던 조합 교육은 새로운 자유시민 정신의 태동과 함께 배우려는 학생과 가르치려는 교수가 모여 학교 조합을 형성하였다. 이 학교 조합은 학문을 매개로 길드 사회가 성립시킨 고등 학문기관으로서의 역할을 수행하였다. 바로 오늘날의 대학의 전신이다. 

 대학 성립 과정을 보면, 신학이나 법학 혹은 의학을 가르치는 학자가 있는 곳에 배우고자 하는 학생들이 보이게 되고, 자연스럽게 학자와 학생은 공동생활을 위한 협동 조직, 즉 조합을 형성하였다. 때로는 학생들만의 조합도 있었고, 교수와 학생이 결합된 조합이 만들어지기도 하였다.

반응형

댓글